우리가 살던 곳에서는 벼를 나락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벼라고 하는 말보다는 나락이라는 말이 귀에 더 익숙합니다.
그 나락을 벨 때가 가까와져오는 것 같습니다.
지난날 나락 포기를 한웅큼 한손으로 잡고 숫돌에 잘 간 낫으로
쓱~잡아당기면 소리도 경쾌하게 지나간 여름 잘 키운 나락포기가
잘려나갑니다. 묵직한 황금빛 나락이삭이 출렁거리지요.
그 일을 해본 사람만이 아는 기분일 것입니다.
나락포기가 잘려나간 곳 바로 밑에는 김을 매거나 모를 심을 때
찍힌 발자국에는 어린 아이 주먹만한 우렁이(우리가 살던 곳에서는
논올뱅이라고 했음)가 한개가 아닌 여러 개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올뱅이를 담을 그릇이 미쳐 준비되지 못한 상태라서
당시 유행했던 검정색 고무신에 가득 담아서 집으로 왔지요.
그 우렁이(올뱅이)를 집에 가지고 와서 양은냄비에 삶아서 초간장에
찍어먹으면 얼마나 맛이 있던지 그 맛을 본 사람만이 알수가 있습니다.
논에서 자랐기 때문에 흙냄새가 진하게 베인 그 올뱅이 맛은 일품입니다.
거기에다가 집안 어른들이 드실려고 주막에서 받아다 놓은 막걸리
한잔을 훔쳐먹으면 더없는 추억의 맛이 되었습니다.
나락을 벨 때 벼이삭 위를 톡톡 튀는 메뚜기도 빠질 수 없는
손님이었습니다. 어느 신문에는 나락을 베는 트랙터가 보이고
어느 신문에는 농부가 밀집모자를 눌러쓴 흐뭇한 얼굴모습도 보입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모두들 우리의 형제들의 얼굴이지요.
언제부터인가 나락이 익어가는 들녁의 사진을 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되어서 아쉬운 마음에 전철을 타고 나가면 전철안에서
상당히 먼거리에 있는 들판의 사진을 찍은 적도 종종 있습니다.
이제 작심하고 시간을 내어서 메뚜기가 뛰고 우렁이가 발에 밟히는
들녁으로 나가보고 싶은 것이 일상의 간절한 소망이 되었습니다.
농약이나 환경오염으로 지금도 나락을 베고 남은 곳에 올뱅이가
있을지 없을지는 궁금하지만 그 나락논에 가보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그 소망이 오늘은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오늘이 아니어도 좋지만
그 일상의 소망을 조만간 이루고 말겠습니다.
밤새워 일하는 중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차가와지는 밤공기가 더욱 가을이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그 가을을 가슴에도 담고 내 작은 디카에도
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절절한데 오늘 밤을 하얗게 새고 나서
아침에 퇴근하면 생각이 어떻게 변하고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디카를 들고 서울에서 수도권 외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손에는 나의 재산목록 1호기 디카를 들고 떠나볼 생각입니다.
나랑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이 가을을 담아보러
같이 떠날 분은 번쩍 손들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가을이 오늘처럼 그렇게 보고 싶은지 나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 가을길을 동행자와 도시락을 둘러메고 동행하고 싶은 밤입니다.
이제 곧 아침이 올 것이고 지난밤 야근근무를 했으니 눈도
침침하고 머리도 어지럽고 배도 고프니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할 것이고 잠도 한숨 자야하겠지요...
아! 점점 깊어가는 가을을 동행자와 달랑 도시락 하나와
물병 하나를 들고 메뚜기 똑똑 튀고 논올뱅이(우렁이)가 발에
밟히는 그곳에 가서 가을을 담고 싶은 날입니다.
그 가을을 내 가슴에도 담고 내 디카에도 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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