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인 국민학교 때는
몸이 참 약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집안에서는 귀한
사람이겠으나 우리 집안엔
손이 더 귀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조부님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할아부지가 우리 부친을
두셨을 땐 이미 회갑을 지난
연세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탓에 할머니를 비롯해
모든 식구들이 장손으로 난
저를 과보호했던 것 같습니다.
몸이 약하게 태어났고
모친이 젖을 충분히 주지
못했지만 지금처럼 우유를
먹여서 어린이를 키우는
것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
이었습니다.
우리는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이었으니까 6.25전쟁이
끝나고 바로 태어났으니
말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1953년에
6.25전쟁 끝나고 참전 군인들이
귀향해서 만든 첫 아이들이 바로
을미생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 젖이 부족하다고
아이에게 우유를 공급할 집이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어머니 젖이 부족하다고 하면
기껏해야 밥을 끓이는 중 발생한
밥물을 아이에게 주는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탓인지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엔 몸이 왜소해서
말 속에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 말 : 쌀을 재는 나무 통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렇게 비실비실 자랐는데
국민학교 6학년 때는 중학교
진학을 위해서 야간에는 교실에
호롱불을 켜 놓고 공부를 했고
(요즘 같으면 담임 선생님의
지도 아래 야간 자율 학습)...
그 덕분에 시골 읍내(당시엔
읍이라고 불렀으나 면이었음)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시골 동네에 있는
국민학교에서는 읍내 중학교
진학이 상당히 어려워서 많은
친구들이 재건중학교를 갔고
그 후에 중학교 졸업 자격 검정
고시를 합격해야 하는 과제를
안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중학교 시험을 보는데 철봉
턱걸이를 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 턱걸이를 하는데 정말 초인적
힘을 쓴 기억이 납니다.
몸이 약했던 나는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는데 평소 1.2개도
어려운 내가 턱걸이를 거의 7.8
개를 한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강한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의문입니다.
아마도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설 같은 이야기...
.
'내가 쓴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눈깨비 속의 점심밥 (0) | 2019.03.23 |
---|---|
비닐 우산 속 데이트 (0) | 2019.03.21 |
불교대학에 입학해습니다 (0) | 2019.03.17 |
위로... (0) | 2019.03.07 |
꿈에 다가가는 법 (0) | 2019.03.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