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나의 이야기

전설 같은 이야기

법학도 2019. 3. 20. 00:19

어린 시절인 국민학교 때는

몸이 참 약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집안에서는 귀한

사람이겠으나 우리 집안엔

손이 더 귀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조부님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할아부지가 우리 부친을

두셨을 땐 이미 회갑을 지난

연세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탓에 할머니를 비롯해

모든 식구들이 장손으로 난

저를 과보호했던 것 같습니다.

 

몸이 약하게 태어났고

모친이 젖을 충분히 주지

못했지만 지금처럼 우유를

먹여서 어린이를 키우는

것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

이었습니다.

 

우리는 베이비붐 세대의

맏형이었으니까 6.25전쟁이

끝나고 바로 태어났으니

말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1953년에

6.25전쟁 끝나고 참전 군인들이

귀향해서 만든 첫 아이들이 바로

을미생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 젖이 부족하다고

아이에게 우유를 공급할 집이

얼마나 되었겠습니까.

 

어머니 젖이 부족하다고 하면

기껏해야 밥을 끓이는 중 발생한

밥물을 아이에게 주는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란 탓인지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엔 몸이 왜소해서

말 속에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 말 : 쌀을 재는 나무 통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그렇게 비실비실 자랐는데

국민학교 6학년 때는 중학교

진학을 위해서 야간에는 교실에

호롱불을 켜 놓고 공부를 했고

(요즘 같으면 담임 선생님의

지도 아래 야간 자율 학습)...

 

그 덕분에 시골 읍내(당시엔

읍이라고 불렀으나 면이었음)에

있는 중학교에 들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시골 동네에 있는

국민학교에서는 읍내 중학교

진학이 상당히 어려워서 많은

친구들이 재건중학교를 갔고

 

그 후에 중학교 졸업 자격 검정

고시를 합격해야 하는 과제를

안기도 했었습니다.

 

그때 중학교 시험을 보는데 철봉

턱걸이를 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 턱걸이를 하는데 정말 초인적

힘을 쓴 기억이 납니다.

 

몸이 약했던 나는 철봉에 매달려

턱걸이를 하는데 평소 1.2개도

어려운 내가 턱걸이를 거의 7.8

개를 한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런 강한 힘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의문입니다.

 

아마도 전설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설 같은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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