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피리
요즘 서울에서는 보리밭을 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운수가 좋으면 구청 앞마당과 공원의 화단이나 화분에 심어놓은
보리를 볼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항상 볼 수 있는 것은 더욱 아니지요.
그런데 저는 운이 좋았는지 보리이삭이 통통하게 여물어가는 보리를
보았습니다. 보리이삭의 까실까실한 수염이 어린시절을 생각나게
하였으니 얼마나 신기하고 기분이 즐거웠는지 모른답니다.
다름이 아니라 서울 서초구청 앞마당에서 말입니다.
우리 세대들이 아니 제가 보리밭을 생각할 때는 아름답다기
보다는 가난한 시절의 보릿고개가 생각나서 아프고
아릿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지난 시절 겪었던 보릿고개는 허기진 배를 냉수로 채우고
책보자기를 어깨에 가로질러 메고 고개를 넘어서 국민학교
를 다닌 기억은 나만의 추억은 아닐 것입니다.
또 일본제국주의로 부터 해방이 되고 나서 직장생활을 하던
이땅의 엘리트 청년 한하운이 문둥병(나병)에 걸려서 피고름을
흘리면서 전국을 떠돌며 피눈물나는 절규를 시로 썼는데
그것이 보리피리입니다.그 당시에는 나병(문둥병)은 天刑의
病으로서 지금의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병으로 사회의 모든
것으로부터 격리당하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슬픈 일이겠습니까...
미루어 그 슬픔과 고독이 짐작이 갑니다.
(한하운 시인은 1920년부터 1975년까지 살았으며 40년대말 경기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 나병(문둥병)에 걸려서 사회로부터 격리되고
떠돌아다녔음. 그는 중국 북경대 축산학과 출신임)
그러나 보리밭은 그렇게 절망적이지는 않았던 같습니다.
비록 배는 고파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시대였지만
희망이 있었고 부모님이 보리밭에 일하러 나갈 때 새참이라도
가지고 따라서 나가면 보리밭에는 꿩이 낳은 꿩알이 소복히
있었고 옆집 누나와 옆집 형의 보리밭 로맨스도 심심잖게
들렸고 시골 국민학교에서 하굣길에 친구들을 놀라게 해준다고
보리밭에 들어가서 숨어있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를 조용히 흘리게 합니다. 그것 뿐만이 아니지요.
보릿대를 하나 꺾어서 보리피리를 만들어서 불면서 온동네를
한바퀴 신나게 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혹시 지금이라도 보리가 한창 익어가는 보리밭에 가시면
보리밭 주인이 보기 전에 보릿대를 하나 쑥~ 뽑아서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어보시는 것도 지난날 추억을 되살리는 일이 아닐까유?
그럼 그것을 입에 물고서 신나게 한번 불어보세요.
필리리 필릴리....하고 말입니다.
그럼 문둥병(나병)에 걸려서 몸에는 피고름을 흘리면서
피눈물나는 시를 쓴 한하운 시인님의 보리피리를 하나 올리니
눈을 감고 보리피리를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보리피리
작자: 한하운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 ㄹ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닐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