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나의 이야기

절박한 순간과 마주칠 때

법학도 2011. 3. 31. 13:20

절박한 순간과 마주칠 때

가급적이면 아껴두었던 말이 있는데유...

난 자주 그런 물음을 수도 없어 해왔으며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긍정에 대한 확신은 더욱 없고 부정에 대한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그럼 그대는 무엇에 대한 긍정과 부정에 대하여 뜬금없이 그런

말을 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귀하고 이쁘게 태어나지 않은 분이 어디에 있을까마는

우리 집안에는 아주 귀한 손자가 하나 태어났었습니다.

그것은 할머니에게 그렇다는 이야기지유.

 

왜냐하면 우리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거의 30년 가까운 연세

차이가 나는 분이었지요(집안 사정이지만 우리 할아버지는

그분의 장남이 죽고(손녀 하나를 남기고 사망, 그 손녀는

지금도 살아 있는데 80대 중반, 나에게 4촌 누님) 대를 잇고

싶은 마음에서 젊은 부인(우리 할머니)과 결혼해서 부친을

보셨고 우리 부친의 장남으로 세상에 태어낫으니 할머니에게는

당연히 귀한 손자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조부님은 이미 작고했고)

 

그 귀한 손자가 태어났을 때 오래 살라고 고목에도 빌고

바위에도 빌고 또 할머니 또래의 무당에게(약간 불경스런 표현)

수양어머니를 구해주셔서 그 수양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하여주셨습니다.

그 덕인지 아프지도 않았고 잘 되지는 않았지만 시골에서

소풀을 뜯던 나는 대처를 나가서 그런 대로 학교도 다니고

직장도 어떤 때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포항종합제철(POSCO)

다니는 등 그런 대로 살아왔던 것인데...

 

어느 날 인생의 절박한 순간과 마주쳤습니다.

부친은 76세를 일기로 작고하셨지만 돌아가시기 몇일 전까지도

집안에 불상을 모셔놓고 자식들을 위하여 목탁을 두드리셨습니다.

그런 할머니와 아버지를 두고 자라고 살아온 나는 그런

어려움을 당하여 간절한 기원을 했습니다.

지난 시간의 일들을 간절하게 반성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갑자기 그런 기도를 했던 것은 아니고 항상 기도의

마음을 가지고 살면서 사찰을 지날 때면 늘 가슴을 여미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왔다는 이야기가 더 타당할 것입니다.

물론 스스로를 반성하고 후회하는 마음도 가지고...

 

그런데 요즘 아니 그 이전부터 심각한 딜레머에 봉착하였습니다.

“그럼 신은 있는가...?”

내 편이 아니라도 좋으니 신의 대답을 듣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껏 가지고 살아온 불심과 샤머니즘을 탓하는

것은 더욱 아니고 제 주제에 다른 종교를 언급할 엄두는 못냅니다.

그저 눈으로 마음으로 그 신의 존재를 알고 싶습니다.

마더 데레사님은 죽기 전에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으로 답을 얻기는 어려운 일이고

그저 신의 존재를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겨서 한 마디 해봅니다.

 

간절한 기원에 응답이 없다고 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신이 없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신에게 갇혀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글은 절대로 종교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님을 부언하니 오해를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행복한 봄날이 되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이제 자장면 한그릇으로 점심을 떼워야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