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나의 이야기

부모님의 행복한 윤회를 믿어봅니다.

법학도 2011. 2. 4. 17:28

부모님의 행복한 윤회를 믿어봅니다.

선산에 누워계신 부모님 조부님 숙부님

그리고 가슴에 묻은 내 동생의 무덤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형님 새해도 되었으니 대자대비한 분에게

참배나 하고 가자는 동생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밤이 깊도록 목탁을 두드리는 스님 곁에서

합장을 하고나니 번뇌는 사라지고 생각은

정지된 느낌을 받고 돌아오는 차속에서 동생은

형님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라는 이야기를 했고 옆에 있던 제수님은 그랬습니다.

아주버님 오늘 저녁은 우리집에서 주무시고 가세요...

(정말로 막내동생집에서 처음 잠을 잤습니다.)

 

50대인 막내동생집에서 처음 하루를 30대인 아들과

함께 밤잠을 잤고 잠이 덜든 시간에 인기척을 듣

실눈을 떠보니 동생이 저를 내려다보는 눈이

애절했지만 모르는 척하고 잠을 청했습니다.

아침에 6시에 눈을 뜨고 동생 가족이 잠을 깰새라

아들을 흔들어 깨워서 서울에 향했습니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려서

9시가 되지 않은 시간에 내가 사는 양재동에

착을 할 수가 있었고 아들에겐 내가 설을 쇠러가기

위하여 준비했던 10만원 중에 쓰고 남은 5만원을

손에 쥐어주고 아들과도 작별을 했습니다.

 

집에 들어가서 옷을 벗자마자 청주에서 한의원을 하는

동생이 문자가 왔는데  형님 왜 그렇게 상경하셨어요.

항상 건강하세요.라고 하기에 나는 그런 문자를 보냈습니다.

동생, 설 쇠느라고 고생이 많았고 내 걱정은 하지를 않아도 되네.

지난 시절 50대초까지는 부모님의 은덕을 입어서

어렵던 시절에도 배고프지도 않았고 시골에서 서울까지

상경하여 고등교육을 받았고 군장교시절을 포함하여

좋은 직장을 다녔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50대초 이후 지금까지는 내 삶을 사는 것이니 후회도

원망도 없다네...하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늘도 내게 큰 은덕을 베풀어주신 부모님의 은공을

생각하면서 부모님의 행복한 윤회를 믿어봅니다.

아부지 어머니 지금쯤 어디에 어떻게 새로운 윤회를

하셨는지요...부모님 고맙습니다.

 

 

마음씨 착한 막내 동생집에 경사가 났습니다.

동생의 딸은 서울 숙명여자대학교 피아노과를 합격했고

변호사가 꿈인 동생의 아들은 법학대학원이 있는

유명대학교에 합격을 했습니다.

적선지가에는 필유여경이라는 말이 새삼 생각납니다.